감독: 이종필
출연: 이제훈(임규남), 구교환(리현상), 홍사빈(김동혁), 서현우(차 소좌)
북한을 배경으로 한 영화 제작된다는 소식이 들려서 이번에도 완벽한 북한군 묘사 영화인가 했더니. 24년 4월 첫 티저가 공개된 후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영화임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예고편은 자유를 위해 탈북하려는 이와 이를 잡으려는 자가 등장하면서 마치 93년 '해리슨 포드'와 '토미 리 존스'가 주연을 맡았던 <도망자>를 떠올리게 했다.
이쯤되면, 무관심에서 급관심으로 변경되고, 극장에서 개봉하길 손꼽아 기다렸는데.
정작 영화를 보고나니 또 한 번 내가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영화임을 알게 되었다.
<도망자>의 남북한 버전을 느슨하게 풀어서 다른 이야기를 하는 영화였다.
그러니깐 영화 <탈주>는, 제목대로 '탈주극'을 표방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영화 내에서 다루는건 현 상황에서 인생 역전을 꿈꾸는 이와 이도저도 못하고 그자리에 주저 앉은 두 젊은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한 마디로 '탈주극'은 그냥 극중 옵션, 설정, 그럭저럭 볼 만한 느낌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였던거다.
내용은 제목대로 탈북하려는 '규남'의 탈주극이다. 여기에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현상'이 저지하고자 쫓고 쫓기는... 생각보다 쫓고 쫓기는 일도 많이 없다. 그냥 '규남'의 계획이 여기저기서 틀어질 뿐이고. '현상'은 막판에서야 본격적으로 쫓아가니 치열하고 치밀한 탈주극을 보여주진 못한다.
이는 애시당초 탈주극을 염두하고 만든게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는 '규남'의 상황을 초반에 배치해서 어찌되었든 '실패'라도 해보고자 떠나려는 이야기와 고민 없어 보이는 금수저 아들 '현상'도 알고보면 고민도 갈등도 많지만. 용기가 없어서 주저앉은 모습을 보여준다. 이 두 캐릭터가 영화의 핵심 축이라서 많은 부분 할애하는데. 그로인해 '규남'과 '현상'이 본격적으로 쫓고 쫓는 싸움을 벌이는건 뒤로 밀려날 수 밖에 없다.
심지어 '규남'과 '현상'은 서로 마주칠 일도 없는 계급과 소속인지라 이둘을 만나게 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덕분에 '규남'의 탈주극은 당황하다 못해 황당할 만큼 허술하게 되고. 급기야 후반부에 이르러선 지금까지의 노력은 뭐였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손쉽게 넘어간다. 그렇다보니 이 영화에서 제목처럼 극적 긴장감을 곳곳에 불어넣어줘야 하건만. 그 어느 무엇도 성공시키지 못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안타까움은, 이 영화에서 탈출하여 '실패'라도 해보는 인생을 살고자 하는 '규남'과 아무것도 못하고 그 자리에 있던 '현상'이라는 캐릭터에 있다.
'규남'이 탈북하고자 하는 이유는 오롯이 북한에서 그가 할 수 희망찬 일도, 혹은 기댈 가족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깐 '규남'에게서 북한은 살아갈 동력이 없는 곳으로서 그는 탈북을 함으로서 새 기회를 노린다. 그에 비해 '현상'은 금수저 집안에 유학파 엘리트 인물이다. 지켜야 할 가족도 있고, 기억 속에 묻어둔 이도 있다. 가만히 있어도 먹고 사는데 부족함이 없지만, 가장 심적으로 공허함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현상'은 무조건적으로 떠나야 하는 '규남'과 달리 현재의 자신에게 옳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알고, 과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도 못했기에 극중 변화를 가장 많이 겪을 수 밖에 없는 인물이다.
이쯤되면 관객은 '규남'의 일차원적인 탈북 행위 외엔 아무것도 없음을 알게 된다. 극중 '규남'의 서사는 모두 탈주 행위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객은 '규남'의 행동이 일방적이지만, 뚜렷한 목적의식을 파악하기 힘들다.
그러나 '현상'은 만약 탈북한다면 가장 많은 핸디캡을 얻게 되는 인물이다. 그에게서 탈북은 안락한 삶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임과 동시에 영적인 진정한 행복을 가질 수 있는 두 가지를 모두 갖고 있다.
만약 탈주자가 '규남'에서 '현상'에서 바뀌었다면 오직 '현상'에게만 이야기가 집중되면서 극적 긴장감과 감동을 불어넣어 줬을 것이다. 어차피 일차원적인 '규남'이 쫓는자가 된다한들 많은 서사가 필요없기 때문이다. 물론, 극적으로 일차원적 인물이 탈주하는 '현상'으로 인해 정신적 성장을 이루게 된다면 또 다른 흥미를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별 설명을 하지 않아도 탈북해야하는 '규남'을 데리고 탈북을 시도한다. 설명이 필요없으니 좀 더 쉽게 다룰 수 있을거라 생각한건지, 혹은 '현상'에게 좀 더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한건진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러한 선택이 남긴건 그저 가벼워진 '규남'의 탈주극이라는 점과 마지막까지 큰 의미나 감동도 선사하지 못한체 끝나버렸다는 점이다.
당연히 탈출해야 하는 사람이 탈출하는데 어떤 큰 감동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쇼생크 탈출>의 '앤디'랑 비교한다면, 적어도 <쇼생크 탈출>은 극적 재미와 긴장감. 그리고 마지막의 감동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많은 인물들을 통해서 '앤디'를 서술한다. 하지만 '규남'에겐 그런 인물들이 없고, 그 스스로도 막연한 탈주이다.
영화 <탈주>는 분명 기존에 나왔던 북한군 묘사와는 결이 달라서 더욱 흥미를 가지게 만든다. 북한이라는 특수성이 극적 재미를 더 해주기도 하고, '이제훈'과 '구교환'의 연기도 좋다.
당황스럽지만 간간이 펼쳐지는 '규남'의 탈주 실패기도 또 다른 상황과 맞물리면서 무작정 나쁜 상황 연출은 아니지만.
과연 그게 최선일까라는 생각은 들게 만든다.
배우의 연기가 좋고, '달파란'의 음악도 긴장감을 불어넣어 좋긴 하지만.
정작 영화는 이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 긴장감없는 허술한 탈주극에 탈출하려는 주인공보다 더 사연 많은 악당 아닌 악당까지. 감독 스스로도 탈주극에서 주는 장르적 쾌감과 특수한 공간에서 오는 드라마 사이에서 갈팡질팡한 듯 하다. 그래서 무엇하나 살리지 못한체 이리저리 채이다가 끝났나보다.
하지만, 이렇게 아쉬움 한 가득인 영화라고 한 들. 영화는 손익분기점 200만 명을 넘긴 255만명을 달성했으니. 아쉬움 따윈 의미가 없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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